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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삶 작성자 청지기
작성일 2005년 8월 24일 조회수 5,326
그리스도를 생명 삼아 생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의 주관적인 방면을 보아야 한다. 니 형제님은 계시를 얻어, 그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고 이제 사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임을 보았다. 또한 그는 주관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그는 또한 반드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히심 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스도의 못박히심 안에 머무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고 옛사람이나 육체로 하여금 십자가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에 의한 그의 환경이 그가 짊어져야 할 실제적인 십자가가 되어야 함을 인식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의 사역의 시작부터 하나님은 그에게 환경을 안배하사 그로 하여금 그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생명 삼아 생활하게 하셨다.

그는 항상 십자가 아래 머물렀고, 어떤 반대나 거절이나 비평이나 책망도 받기를 원했다. 그는 자기를 위해 변명하지 않고 자기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받을 고통을 감수하기 위해 사람들과 이유를 말하거나 사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를 나타내는 것을 피했고, 그가 주님을 위해 무슨 선한 일이나 무슨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실지로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했다.

그의 초기 사역에서 그는 여섯 동역자로부터 추방을 당했다. 그때 그의 혈기와 육체가 일어나 그들의 행동에 대해 반응하려고 했으며, 그들과 같이 모이는 성도들 대다수가 그의 편에 서 있었으므로 이러한 경향은 더 강화되었다. 그가 외지로 나가 사역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편지와 전보로 그가 추방당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가 전보와 편지를 받았을 때 그의 속에는 그것을 읽지 말라는 금지하심이 있었다. 그러나 복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그 편지와 전보를 읽고서 심히 노했다. 그는 여섯 동역자들이 그를 추방한 것은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돌아가서 자기를 위해 변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안에서 성령이 즉시 주님이 자신을 위해 변명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자 그는 주님으로 인해 잠잠했다.

복주에 도착했을 때 많은 형제 자매들이 부두에 나와서 그를 환영했는데, 그들은 참다 못해 여섯 동역자들이 어떻게 불공평하게 그를 대했는가를 말해 주었다. 그날 저녁에 그들은 부두에서 그의 집까지 따라갔다. 그들의 동정이 그의 혈기를 격동시켰다. 그러나 주님은 강력하게 그를 저지하심으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게 하셨다. 그때 형제 자매들은 한군데 모여서 그의 명확한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가 자신을 위해 변명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고, 그러한 국면을 피하기 위해 이튿날 집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갔다. 그가 그들에게 잠잠하기를 권하자, 이것은 그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다방면으로 어떻게 실제적으로 주님의 죽으심에 머무는가를 배웠고,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에 의해 살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을 배웠다. 그 고통스러운 기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찬송을 썼다.

1. 바른 길 벗어나면은 편해질 수 있지만
   충성된 주의 고난을 난 기억한다네
2. 난 기꺼이 택하였네 갈수록 좁은 이 길
   이 세상에서 난 다만 나그네 된 잘세

3. 주님의 웃는 얼굴만 난 주목한다네
   세상은 외모 구하나 난 주 기쁨 구하네
4. 내 원함 오직 날 낮춰 주님만 섬기어
   그날에 주님의 칭찬 얻는 것뿐일세

5. 난 매일 심판대 앞의 밝은 빛 바라봐
   내 모든 생활과 일들 불 통과하기 원해
6. 이 세상 명예와 부귀 영광과 친구들
   성공과 칭송과 발전 너희가 얻으라

7. 난 외롭고 가난해도 충성을 다하여
   끝까지 나의 주님만 따르기 원하네
8. 내 주님 가신 그 길은 죽음의 길이니
   난 다만 주로 인하여 잃는 자 되기 원해

9. 영광은 장래 오리니 오늘은 인내해
   난 결코 주 오시기 전 세상복 구치 않네
10. 내 모든 눈물 그 날에 주 닦아 주리니
   면류관 얻는 날까지 충성 다해 전진하리

     (한국복음서원 찬송가 468장)

아직 결혼하기 전 상해에 거할 때, 니 형제님의 모친이 한동안 그와 함께 생활했다. 어떤 사람이 한 여인이 그와 동거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전에 그를 도왔던 그로브스(Miss Groves) 자매는 이러한 헛소문을 듣고서 그에게, 『한 여인이 자네와 동거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그로브스 자매는 그를 책망했다. 수년 후에 니 형제님이 이 일을 내게 알려 주었는데, 내가 그에게, 『왜 당신은 그녀에게 그 여인이 당신의 모친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로브스 자매는 그 여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는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기를 원치 않았다.

니 형제님이 결혼한 후, 그 아내의 고모는 만일 그가 자기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으면 어떤 조치를 취하고 그의 명성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인사하러 가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그를 위협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인사하러 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위협 때문에 오히려 그는 그녀의 요구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가하는 공격을 감소시키는 어떤 일도 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임을 믿고, 어떤 반대나 공격도 견디며 그것을 십자가로 여겨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생활을 하기를 원했다.

1942년에 상해 교회에서는 그와 관련하여 큰 풍랑이 일어났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어떤 말로도 변명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국면들을 잠잠케 하고 자기가 받는 고초를 감소시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또 한 번 십자가의 공과를 배우고, 그의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힘입어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했다.

그 때의 풍파로 인해 그의 사역은 육 년 동안 중단되었다. 고통스러운 육 년 동안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사역을 회복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다른 일을 시작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잠잠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아래서 십자가의 공과를 배웠다. 그 기나긴 시련 중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제한시켰고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으로 체험했다. 육 년이라는 길고 긴 어두운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 왔을 때, 주님이 오셔서 1948년 상해에서의 한 차례의 부흥을 통하여 그의 사역을 회복시키셨다. 그 때 그는 우리에게 포도나무의 일생을 말하는 다음 찬송가를 부르자고 했다. 이 찬송은 포도나무가 각종 고난과 다룸을 끊임없이 받으나 결국은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묘사한다. 그 중 세 절은 이렇게 말한다.

겨울 동안 추위 속에 떠는 사람들에게
슬픔 고통 근심 속에 압박받는 이에게
달콤함과 따뜻함을 포도주는 주고 있지
그러나 넌 외로이 바깥 얼음 속 눈 속에서
모든 의문 어려움 요동 없이 견디네

추운 겨울 지나 다시 너는 열매 맺길 준비해
싹을 내며 가지 뻗어 푸르름의 옷 입어
이전의 괴로움으로 마음 속에 원망 없고 달콤함뿐일세
한없이 잃어버림을 인해 헌신 감소되지 않으리

너는 손을 높이 들어 하늘 공기 마시며
결코 땅에 속한 감정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고
웃는 얼굴로 죽음을 대면해 다시 사랑의 박탈하심을 맞이하리
마치 전에 손실 아픔 괴로움을 겪지 않은 자처럼

     (한국복음서원 찬송 465장)

이 찬송가는 니 형제님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영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 언제나 고난과 다루심 아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기나긴 겨울을 거쳐서 그는 또다시 열매 맺기를 예비하였고, 사람들의 악한 대우로 인해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신선한 헌신을 보류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전에 어떤 타격도 받지 않은 자처럼 어떤 희생도 기꺼이 맞이하며 다시 박탈당하기를 원했다.

그는 그의 친밀한 동역자인 우리에게 비록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는 아무 주저함 없이 변론해야 하지만, 우리의 행위와 인격이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때에는 자신을 위해 변호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 주었다.

1948년에 상해 교회의 한 형제는 오랫동안 지위를 얻고자 하는 야심을 갖고 있었으나 얻지 못하자 니 형제님을 반대했었다. 그 형제는 한 순회 전도자를 재정적으로 보조하고 있었는데, 그 전도자는 니 형제님의 몇 가지 일을 비평하고 참소하는 기다란 글을 썼었다. 이 긴 글이 널리 퍼졌지만, 니 형제님은 자기를 위한 어떤 변호도 하지 않았다.

1950년에 그와 나는 함께 홍콩에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서 두 청년이 집회소 정문 앞에서 그를 비평하는 전단을 뿌렸다. 이 두 청년이 바로 우리 앞에 서 있었지만 그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나는 그와 오랫동안 왕래했지만 한 번도 그가 누구와 다투고 변론하고 쟁론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에게서 예수의 생명이 그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예수의 죽음 아래 사는,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후 4:10).

니 형제님의 개인 간증

(1936년 10월 20일 복건 고랑여에서 전한 것임)

믿는이가 십자가의 도에 관해 읽고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지만, 십자가의 공과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참되게 십자가의 길을 알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동역자와 동역하며 섬길 때, 주님은 나를 위해 많은 십자가를 안배하셨다. 많은 경우 나는 어려움을 느꼈고 십자가의 다루심을 받기를 꺼려했으며 순종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내 속에는 만일 십자가가 주님의 안배하심이라면 비록 그것이 어려워도 기꺼이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옳다는 느낌이 있었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해 순종함을 배우셨다(히 5:8, 빌 3:8). 내가 어찌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십자가의 공과를 배우기 시작할 때 처음 팔구 개월간은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안배하신 십자가에 대해 마땅히 저항 없이 잠잠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었다. 나는 순종하기로 결심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일이 닥칠 때 나는 순종하기가 어려웠고 내 속에는 거스르는 사상이 충만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괴로움을 느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안배하신 십자가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내게 실로 유익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동역자 중에는 어려서부터 나의 급우였던 다섯 명이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외부에서 왔으며, 나보다 다섯 살 위였다. 그 다섯 사람은 항상 그 형제 편에 서서 나를 반대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언제나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많은 일에 있어서 내가 했어도 공로는 그들에게로 돌아갔다. 어떤 때 그들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울곤 했다. 그러한 기간 동안 나는 십자가를 지는 것에 관한 몇몇 찬송을 썼고,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환난에 참여하는 것」(빌 3:10)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다. 내가 세상과 왕래할 수 없게 될 때 하늘의 교통을 누렸다. 구원받은 지 이 년이 되었어도 나는 아직 십자가가 뭔지 몰랐었다. 그러나 이 때에 비로소 나는 십자가의 공과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반에서 언제나 일등이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일등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두번째 위치에 두셨을 때, 나는 불순종하며 하나님께,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얻은 영광과 권위가 너무 적습니다. 모두가 저보다 연장한 동역자 편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마음 속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며, 내게 임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좋은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순종을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기꺼이 두번째 위치에 있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내가 기꺼이 순종했을 때 체험한 기쁨은 구원받을 때 체험한 것과 달랐다. 이 기쁨은 넓다기보다는 깊은 것이었다. 다시 팔구 개월이 지난 후, 많은 경우에 나는 파쇄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기를 원했다. 영적인 노정에서 나는 기쁨과 평강이 속에 충만했다.

주께서 하나님 손에 순종하셨듯이 나도 이렇게 순종하기를 원한다. 원래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는데(빌 2:6), 내가 어찌 감히 주님 위에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처음 순종을 배울 때에는 어려웠지만, 갈수록 용이하다고 느껴졌다. 결국 나는 하나님께, 내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택하며 십자가의 파쇄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위트니스 리
[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워치만 니, 78-85쪽,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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