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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생명과 진리
 
글제목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 작성자 청지기
작성일 2005년 8월 24일 조회수 557
 육신 안에서 주를 아는 것과 성령 안에서 주를 아는 것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 20:11-18).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 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 24:13-16).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25-32).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요 21:1-24)


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로부터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주 예수님에 대해 두 종류의 다른 인식을 가고 있다. 한 종류는 육신 안에서 주 예수를 아는 것이고, 또 한 종류는 성령 안에서 주 예수를 아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니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고 말했다. 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갈 1:15-16, 원문 참조)고 말했다. 이 구절들은 오늘 우리가 무엇에 따라 주 예수를 알아야 하는가를 보여 준다. 이제 성경의 구체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이 무엇인가를 보기로 하자.

막달라 마리아의 주님에 대한 인식

막달라 마리아가 주 예수님의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을 때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아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기묘하게도 이제 마리아는 몸을 돌이켜 보았으나 그녀가 여러 해 동안 보고 따라 왔던 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 마리아는 전부터 알아온 주님을 이제는 조금도 모르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육신 안에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바라고 얻고자 한 그 몸은 이미 이땅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육체 안에서 그분을 알았던 모든 사람은 부활하신 후의 그분을 알지 못한다. 주님은 마리아가 아는 주 예수가 아니라 그녀가 알지 못하는 주 예수가 되셨고, 더이상 역사상의 주 예수가 아니라 영 안에 살아 계신 주 예수가 되셨다. 그분은 육신 안에 살아 계신 주 예수가 아니라 이제는 성령 안에 거하신 주 예수가 되셨다. 마리아가 본래 육신대로 주 예수를 알았으나 이제는 그러한 방법으로 그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마리아의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 마리아의 귀는 주님을 알았다. 이제 그녀의 귀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귀로는 주 예수를 알 수 없다. 이전에 그녀의 눈은 예수님이 누구인 줄을 알았다. 오늘 그녀의 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두 눈으로는 주 예수님을 알 수 없다. 오늘 마리아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사렛 사람 예수는 변하셨다. 마리아는 여전히 이전의 마리아이지만 오늘 나사렛 사람 예수는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이전의 귀와 눈과 이해력이 오늘에 와서는 쓸모없게 되었다. 이전의 방법으로, 이 땅에 거하며 육신 안에 거하신 주 예수를 아는 것은 가능했지만, 부활하시고 영에 속하며 하늘에 속하신, 성령 안에 거하시는 주 예수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함은 마리아쪽에 있지 않고 주 예수님에게 있었다. 주 예수께서 변하셨기 때문에 마리아도 변해야만 변화된 주 예수를 알 수 있다. 마리아에게는 새로운 계시가 있어야만 주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다.

후에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놀랍다. 주님이 마리아라 부르시니 마리아는 그분인 줄 알았고 계시를 얻게 되었다. 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는 주님이 마리아에게 "내가 예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주 예수님이 마리아라고 부를 때 자기 이름을 기억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랍오니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주 예수는 그녀에게 어떠한 일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고, 단지 마리아라고만 부르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속에서 분명해졌다. 속에서 아는 것이 바로 계시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큰 원칙, 즉 계시는 귀나 눈이나 이해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귀와 눈과 이해력 외의 어떤 기묘한 것에 의해 아는 것임을 보아야 한다. 이 기묘한 앎이 바로 계시이다. 마리아는 주님을 안 후에 즉시 주님의 제자들에게 달려가 말해주었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주님에 대한 인식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중 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들이 만난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그 일은 마리아가 말한 주 예수에 관한 일이었다. 그때 주 예수님은 친히 그들을 가까이 하셨다. 그러나 혼미케 된 그들의 눈은 보활하신 주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육신 안에 계셨던 주 예수님을 아셨지만 부활하신 주 예수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부활을 기묘한 일이라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주 예수님은 그들과 대화를 하며 교리를 들려주셨다. 주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성경의 교리를 깨달았고 감동을 받아 속에서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졌지만, 여전히 주 예수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교리와 계시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성경을 알았지만 주님을 몰랐고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알았지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해가 져서 엠마오에 가까웠을 때 그들은 주님께 함께 유하시기를 강권했다. 함께 식사를 할 때 예수님이 떡을 그들에게 나누어 줄 때에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 비로소 그분인지를 알았다. 이것은 주 예수에 대한 사람의 지식에 두 종류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 종류의 지식은 성경이 사람에게 보여주는 지식이고 또 한 종류의 지식은 주 예수께서 사람의 눈을 열어줌으로 주어진 지식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익숙하고 남에게 말해 줄 수도 있지만 주 예수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성경의 교훈을 알 뿐 아니라, 주님이 그의 눈을 뜨게 하므로 주 예수를 안다. 이 두 가지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기독교에 성경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계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 기독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계시가 없으면 우리 개인에게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의 한가지 문제는 전수된 지식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에 전달되고, 한 사람의 머리로 이해한 것이 또 다른 사람의 귀에 전달된다. 전수된 지식이기 때문에 모두가 교리요 교훈뿐이다. 우리는 성경 지식만 있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엠마오로 향한 두 제자는 벌써부터 성경을 알고 있었다. 주님이 길에서 그들과 대화를 갖고 그들에게 성경을 해석해 줄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웠지만 여전히 주님을 알지 못했다. 주님에 대한 내적 인식만이 참된 인식이다. 당신은 주님에 대하여 내적 인식을 갖고 있는가?

일곱 제자의 주님에 대한 인식

어느 날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두 아들과 또 다른 제제들이 함께 모였을 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니 그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전에 고기를 잡을 줄 알던 사람이 주님을 따르다가 이제 다시 돌아가서 잡으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룻밤 내내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더 기묘한 것은, 날이 밝았을 때 주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신 줄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 사람의 눈으로는 부활한 주 예수를 알 수 없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는 항상 주 예수와 함께 있었고 나다나엘은 가장 먼저 주님을 알았었다.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의심했었지만 주님은 특별히 그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했다. 제자들에게는 다른 체험이나 다른 능력이 있어야 주님을 알 수 있다.

주 예수님이 그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많아서 들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주님의 품 안에 누워 있었던 요한은 주님이신 줄을 알고 베드로에게 "주시라"고 말했다. 시몬 베드로는 주시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에 뛰어내렸다.

그들은 좀전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주님을 보았지만 주님을 알지 못했다. 이제 홀연히 알게 되었고, 기묘하게 알게 되었다. 이러한 앎이 바로 기독교이다. 이러한 앎은 요동치 않는, 내적으로 보고 아는 것이므로 속에 힘이 있다. 이러한 앎은 제드로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다. 예수님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 한 사람도 "당신은 누구요?"라고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이 주님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말이 모순된다고 느끼지 않는가? 만일 그들이 그분이 주님인 줄을 알았다면 그분이 누구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묻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묻지 못한 것이다. 감히 묻지 못했다는 것은 모를 뿐 아니라 두려웠기 때문에 감히 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중 "감히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고 또한 "주신 줄 아는고로"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밖으로 알지 못하지만 속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를 제자들이 밖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그분이 주신 줄을 알았다. 그분의 모양을 보거나 그분의 음성을 들어도 모르고 머리로는 그분이 누구인가를 물어야 하지만, 속으로는 물을 필요없이 그분이 주신 줄을 안 것이다.

당신은 주님에 대해서 모른다로 말하면 정말 모르고, 분명하다고 말하면 아주 분명한 체험이 있는가?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이다. 많은 일에 대해서 당신은 미묘하다고 느끼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모르지만, 또 한면으로는 매우 분명하다.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계시는 속에서 분명한 것이요, 속에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에 따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 계시에 따라 주님을 아는 자가 복이 있다. 오직 이러한 사람만이 주님 앞에서 능력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외적인 지식을 내적인 계시에 대치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에 대하여 내적인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당신이 속에서 알 때에는 누구도 당신을 요동케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을 열어 주사 우리가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하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머리와 귀와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육신 안에 계신 주 예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앎은 우리에게 별 쓸모가 없고 별 힘이 되지 않는다. 참으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우리 속에 계시하심으로 우리가 속에서 분명해지고, 속으로 알고, 깨닫고, 그분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을 갖지 않기를 간구한다.


워치만 니
[열두 광주리 가득히,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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