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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이단적' 교회 작성자 청지기
작성일 2008년 5월 23일 조회수 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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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기독교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세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로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에클레시아, 즉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로 이 공동체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유기체임으로 원형(原形)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왜냐면 사회는 그 형태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있는 정신, 즉 처음 교회의 본디 모습은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수 천년의 역사의 변천 속에도 초대교회의 그 정신과 모습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과연 그 성경적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가. 부끄럽지만 한국교회는 성경적 교회론에서 볼 때 모두가 ‘이단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성경적 교회 모습에서 많이 이탈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주류를 이룬다. 개혁교회는 오늘도 ‘개혁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겨우 120여년만에 재빨리 중세 황제교회의 모습을 흉내 내며 교권과 재산과 명예욕에 찌들어가고 있다. 이는 참 이상한 일이다. 아직도 한국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마이노리티(Minority)이다. 그런데 언제 교권을 탐닉하고 재산을 늘리며 명예욕에 심취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사회는 호시탐탐 서구문화의 옷을 입고 들어온 기독교에 대해 견제할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제 겨우 예배당 하나 지을 만한 여유가 생겼다 싶으니까 지도자들이 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변질은 신앙 내용의 기복주의이다. 이미 한국교회의 강단은 무속적 기복주의에 점령당한 상태이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고”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언에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제대로 된 교회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런 교회의 의식에 무슨 기복주의 설교가 끼어들 자리가 있겠는가? 또한 한국교회는 서구의 청교도적 자본주의 훈련을 받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칼빈주의자들의 근면 성실과 청지기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결코 투기나 한탕주의에서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배울 수 없다.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다. 물량적 성공주의는 세속주의로서 교회의 적이다. 그리고 교회론의 비성경적 비신학적 태도이다. 즉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 기독교는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말했다는 것처럼, 사도성의 계승권을 가진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기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봉하는 종교인들의 친목단체쯤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개교회주의는 교회 재정운영의 폐쇄성으로 인해 지체의식이 없어지고, 교회와 교회간에, 목회자와 목회자 간에, 상대적 빈곤감을 부추기게 하고 동료의식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 교회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발췌 http://www.iep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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