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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찬송과 찬미
 
글제목 - 시(詩)의 조건 - 작성자 timothy
작성일 2006년 3월 23일 조회수 2,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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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의 조건 -

모든 가치 있는 시(詩)에는 3대 필수조건이 있다. 이들 중에서 한 가지 라도 결핍될 때 그것은 좋은 시(詩)라고 할 수 없다.

첫째는 진리면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많은 시가가 다른 조건들에는 부합되지만 진리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그런 찬송을 부르게 하는 것은 그들을 문제로 이끄는 것이고 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고 그들을 합당치 않은 상황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찬송을 부를 때 그들의 느낌은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 찬송 중에 잘못된 교리가 있을 때, 이는 그들의 느낌을 스스로 속이게 하고 실제를 못 만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적인 의미로가 아니라 진리로 그분을 만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오직 진리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실제를 만지지 못한다.

 주 예수의 피가 우리 마음을 씻었다고 말한 복음 찬송이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우리는 주 예수의 피가 우리의 마음을 씻는다는 말씀을 보지 못한다.  주 예수의 피는 우리의 마음을 씻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없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주 예수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씻는다고 말한다. 주님의 피는 마음 자체를 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씻는다. 죄가 씻어짐으로 우리의 양심은 더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피는 우리의 마음을 씻지 않고 우리의 양심을 씻는다. 우리의 마음은 피로 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렘 17:9). 어떻게 씻어도 깨끗케 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고기 같은 마음을 주는 것이다(겔 36:26). 옛 마음을 씻는 것이 아니라 새 마음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주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옛 마음을 씻지 않고 사람에게 새 마음을 주신다. 사람의 양심의 거리낌을 씻는 것이지 마음을 씻는 것이 아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 마음을 씻은 예수의 피를 찬미하는 그 찬미는 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엄숙한 일이다. 만일 어떤 찬송의 교리가 틀렸다면 그 찬송은 사람들을 잘못된 느낌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많은 찬송에는 시대적인 구분이 없다. 그래서 그것이 아브라함이 부른 것인지 모세가 부른 것인지, 유대인이 부른 것인지 그리스도인이 부른 것인지, 구약에서 부른 것인지 신약에서 부른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찬송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속과 무관한 천사나 죄 없고 보혈이 필요치 않는 사람같이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시대적인 구분이 없는 찬송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잘못된 위치로 안내한다.

 많은 찬송 속에는 바램만 있을 뿐 확신이 없다. 당신으로 하여금 구원에 대해 바라고 사모하며 갈급하게 할 뿐 그 안에 확신 곧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조금도 없다. 우리는 모든 신자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믿음과 확신을 가득히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 바깥뜰에서 찬송을 부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남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사모할 뿐 백성은 아니라는 느낌을 줄 것이다. 많은 찬송은 우리에게 은혜를 얻지 못하여 얻으려고 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찬송도 그리스도인을 잘못된 위치에 두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위치가 아니다. 확신이 있고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위치이다. 확신이 부족한 찬송은 그리스도인이 부르기에 합당치 않다.

 보통 찬송에서 가끔 범하는 또 하나의 과오는, 곧 사람이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찬송은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사람은 죽음을 통해 영광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은 후에 영광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 없다. 영광 안에 들어감은 이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는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기를 기다린다. 오직 주님만이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가셨다. 이것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고전 15:45, 고후 5:2-3). 하나님이 자녀들로 하여금 "죽은 후에 영광에 들어간다"고 착각하게 하는 찬송은 우리가 부르기에 합당치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찬송은 반드시 정확한 교리를 갖춰야 한다. 정확한 교리가 갖추어지지 않은 찬송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데로 인도한다.

둘째로 교리만 옳다 해서 다 좋은 찬송은 아니다. 또한 시(詩)의 형식과 구조를 갖춰야 한다. 진리가 옳은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진리가 옳을 뿐 아니라 시의 형식과 구조를 갖춰야만 좋은 찬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찬송은 설교가 아니다. 우리는 설교의 기록으로 찬송을 쓸 수 없다.  "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로 시작된 찬송이 있는데 이는 좋은 교리일뿐 결코 그것을 찬송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것은 교리이지 찬송이 아니다. 시편에 있는 찬송은 모두 시적인 냄새를 풍긴다. 모든 시의 구조와 표현들은 시인의 말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한 것으로서 모두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길이의 자구(字句)를 갖추어야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조와 형식이 시(詩)여야 한다.

세째로 시는 진리와 시적인 형식과 구조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영적인 접촉을 가질 수 있고 영적인 실제를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에 관한 한 편의 시이다. 우리는 이것을 읽을 때 교리적으로 다윗의 회개가 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이 함부로 된 것이 아니요 그 구조가 곡절(曲折)로 된 것임을 본다. 동시에 그 시 안에서 우리는 무언가 영적인 실제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시의 부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서 다윗이 회개했기에 그 시는 회개의 감각이 믿을 만함을 볼 수 있다. 시를 쓴 사람은 기쁠 때는 뛰면서 높은 소리로 환호하고 슬플 때는 애통하였다. 실제가 없이 말만 한 것이 아니라 말 속에 영적인 실제가 있다.

 그러므로 시는 정확한 교리와 시적인 형식과 구조를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영적 실제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한 편의 시가 슬프다면 마땅히 슬퍼야 하고 즐겁다면 응당 즐거워야 한다. 시는 항상 우리에게 어떤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회개의 찬송을 부를 때 속에 공명이 없고 오히려 부를수록 희희낙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슬퍼하고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헌신의 느낌이 없이 헌신을 표명하는 찬송을 부를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자신이 선하고 자랑할 게 있다는 느낌을 갖고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지고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는 한 편의 시를 말할 수 없다. 만일 어떤 한 편의 시가 우리에게 정확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좋은 시라고 말할 수 없다. 시의 감정은 반드시 진실되고 영적인 실제를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시는 반드시 진리가 정확하고 시의 구조를 갖춰야 하며 동시에 찬송을 부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실제와 시의 말한 바를 만지게 해야한다.

                                                        - 한국복음서원 그리스도인의 50필수과정 제2권 찬송-

 


There Comes In My Heart One Sweet Strain
( 앨범 My heart's desire-first love - kgbr.co.kr)

디모데1
형제님 이제 찬송시 많이 쓰시겠군요^^ del modify 200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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