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memberdaum cafee-mail
로고
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more
more
Home > 토론방
 
글제목 김기철씨 기자회견에 대한 (지방)교회측 반박 작성자 형제
작성일 2008년 7월 22일 조회수 3,358
첨부파일  

김기철씨 기자회견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해명 및 반박

 

 

한기총 이단 상담소(소장: 최삼경 목사) 2008 7 11일 기독교 연합회관 15층에서 소위 <지방교회 탈퇴자 김기철씨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한 기독교 TV CTS(사장: 감경철)는 같은 날 저녁 9 45분 뉴스에서 김기철씨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부풀려지고 왜곡된 내용들을 그대로 보도한 바 있다.

 

(지방)교회측은 위 두 단체가 한 개인의 검증 안된 거짓 주장을 그대로 대변함으로써 진실을 가리고, 신실한 성경교사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및 전 세계 (지방)교회 성도들의 명예와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엄중 항의하고자 한다.

 

이 글은 대중매체를 통해 김기철 씨의 거짓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들음으로써 진실을 오해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한 것이다. 아래 내용들은 과연 김기철씨가 누구이며, (지방)교회와 관련한 그의 주장이 왜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를 분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1. 김기철씨, 그는 누구인가?

 

기자회견장에 있던 사람이라면 (지방)교회에 25년이나 몸 담았었다는 그가 “현재 (지방) 교회 인도자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정상적인 (지방)교회 성도들이라면 여러 동역자들 중에서 랑 캥거스(Ron Kangas), 앤드류 유(Andrew Yu) 등이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대중집회를 인도해 왔고, 한국의 여러 (지방)교회들을 생명과 진리로 돕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방)교회 생활 25년을 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왜 그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것일까? 김기철씨는 이름은 등록해 놓았었는지는 모르되 참되게 (지방)교회 생활하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를 돌보던 (지방)교회 봉사자에 따르면,

 

김기철씨는 1983년경 충남 보령시 미산면에서 기독교 자유단체 소속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워치만 니 책을 접한 후 논산 부흥고무 상회에 신발사러 왔다가 논산교회에 연결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 소속단체와의 연결을 끊지 못하고 한 동안 양쪽을 오가는 생활을 해 왔다. 그는 지금부터 약 10여 전부터 그곳 단체 생활을 정리하고 논산 (지방)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으며 내성적인 성격인 그는 정상적인 교회생활에 쉽게 뛰어들지 못한 채 늘 겉 돌았다. 그러던 중 약 5-6년 전부터 김제인근 농장에 다녀오겠다며 소속교회와 성도들을 속이고 전북 김제소재 모 기도원에서 자신이 주축이 된 별도의 모임을 최근까지 유지해 왔다. 그는 이웃 마을에 사는 한 여호와의 증인과 최근까지 십여 년 이상을 친구처럼 사귀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의 영향을 받아 왔고 그들의 왕국 회관에도 여러번 출석했다.

 

위 증언은 의도적으로 강조되던 <25년 간> (지방)교회 신도였다는 주장이 얼마나 부풀려진 억지인지를 잘 보여 준다. 김기철씨는 자신이 쓴 기자회견 보도자료에서 진용식 목사를 마치 탈퇴를 결심한 최근에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때 기도원에서 함께 생활한 적도 있을 만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김기철씨는 오랜 친구사이인 진 목사를 통해 최삼경 목사에게 연결되었고 이번 기자회견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교회와 신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위트니스 리가 ‘선악과를 사탄으로 해석’하는 것을 25년 동안 그냥 듣고만 있다가 작년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경륜’이란 책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아 (지방)교회를 탈퇴했노라고 주장했다. (지방)교회 생활을 시작하면 주변에서 즉시 권하여 읽게 하는 책들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따라서 위의 그의 말도 특정의도를 위해 말을 꿰어 맞춘 냄새가 짙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롯한 (지방)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경륜’(딤전1:4), ‘생명되신 그리스도’(1:27, 3:4), ‘그리스도의 충만인 몸된 교회’(1:23) ‘교회의 최종 완성인 새 예루살렘’(21:2)을 성경을 대표하는 핵심 진리로 알고 추구한다. 만일 김기철씨의 주장처럼, 그가 한 때 참으로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혹 되었었다면”, 그에게 위 진리들에 대한 인식과 조성이 있어야 옳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이런 저런 행적들은 그런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지방)교회 성도들이 추구하는 핵심진리 안에는 제대로 뛰어든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기철씨는 (지방)교회 성도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지방)교회와 관련된 그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김기철씨가 (지방)교회를 떠난지가 한참 전인데 왜 하필 이 시점을 택하여 기자 회견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모 인사가 김기철씨를 이용하여 오는 9월에 있을 통합측 총회의 (지방)교회 관련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2. 김기철씨가 비판한 진리와 실행들에 대한 반박 및 해명

 

우리는 여기서 보도자료 내용 전체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 내용이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 사실이나,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대표적으로 바로 잡고자 한다.

 

 

1) 선악과가 율법을 상징하고 사탄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김기철씨는 교회와 신앙과의 인터뷰 및 지난 한기총 기자회견 때 위트니스 리가 ‘선악과는 사탄을 묘사한다’ 라고 가르침으로 충격을 받아 (지방)교회를 탈퇴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지방) 교회측에게 질의한 다른 자료에서 ‘선악과는 율법을 가리킨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먼저 ‘생명나무’도 아니고 ‘선악과’에 대해서 자기와 견해가 다르면 “비성경적인 주장” 이니 “이단교리”니 하는 김기철씨의 진리인식이 과연 균형잡힌 것인지 의심스럽다. 율법은 그의 주장과는 달리 에덴동산이 아닌 인간 범죄 이후에 더해진 것이 아닌가(3:19)?

 

아무튼 위와 같은 김기철씨의 주장과 태도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선악과’가 무엇인지는 우리의 ‘신앙’(1:3)을 좌우하는 핵심진리가 아니다. 만일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 진리였다면 교회 역사상 당연히 주목을 받았을 것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선악과’에 대해 자기와 해석이 다르면 이단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치우친 것이다. 핵심진리가 아닌 성경기록은 우리의 신앙양심을 따라서 믿으면 족하다. 우리는 진리인식에 있어 한쪽으로 치우친 개인이나 집단일수록 ‘선악과’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볼수 있다. 한 예로 안상홍 증인회는 ‘선악과와 복음’(안상홍 지음)이란 책자를 만들어 포교하고 있다.

 

둘째, <선악과는 율법이다>라는 김기철씨의 주장은 한국교계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대표적인 한국 장로교 보수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와도 다르다. 박형룡 박사는 “선악과가 어떤 종류의 나무이었는지는 우리는 그 정체를 알수 없다”고 했고 “우리는 반드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경험적 윤리적 지식 행동과 수행의 지식을 의미 한다고 결론하여야 할 것이다.(박형룡 전집 III, 인죄론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원, 1988, 149))라고 말했다. 이러한 박형룡 박사의 선악과론은 김기철씨의 주장과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가? 또한 한 쪽이 맞으면 다른 쪽은 이단인가?

 

결론적으로, 한국교계는 ‘선악과’에 대하여 지금처럼 김기철씨의 손을 들어주려면,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위트니스 리는 물론 박형룡 박사도 배척해야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만일 그것이 무리한 처사라고 생각된다면, ‘선악과’론의 차이는 이단사유가 아니며 각자가 신앙양심을 따라 믿을 자유가 있음을 들어 김기철씨를 잘 지도해야 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의 선악과에 대한 해석은 그 다음에도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2) ‘인간이 하나님된다’는 소위 ‘신화 사상’(Deification)에 대하여

 

김기철씨는 위트니스 리가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 라고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지방)교회를 탈퇴했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종교 등에서 이영호 목사는 "어찌하든 하나님이 된다는 이러한 말은 아주 위험하다. 일반 신도들에게는 전해 주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라고 주장했다.

 

물론 누가 전제조건이나 설명도 없이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고 말한다면, 우선 그 말 자체가 듣기에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영호 목사 주장처럼 이런 말 자체를 아예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진리 변증가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함으로, 확신없는 주제에 대하여 경솔하게 단정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조언하고자 한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학의 한계에 묶이지 말고 성경 진리들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알수 있도록 끊임없이 추구해야 바른 진리 변증을 할 수 있음을 지적코자 한다. 어떤 주장 자체는 지극히 성경적임에도, 그것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소위 이단감별사의 진리인식에 한계가 있어 교회와 성도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신화’(deification) 관련 진리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일반 성도들에게는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 매우 생소할수 있다. 그러나 정통 교부들의 저술들을 읽어 본 신학자들은 이 주제가 구원론과 관련하여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회자되던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영호 목사 주장에 의하면 신앙의 기초를 놓은 이러한 초대 정통교부들이 위험한 이단 교리를 전한 것이 되고 만다. 과연 그러한가?

 

(지방)교회측은 이런 오해와 편견이 성경에서 계시된 ‘신화’ 진리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온다고 판단하여, 정통 교부들의 신화 사상을 소개하는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그 작업의 일부로써 프랑스어로 된 Jules Gross의 책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하여The Divinization of the Christian According to the Greek Fathers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출판한 바 있다. 이 영어 원서는 한국복음서원을 통해서 구입이 가능하다. 이 책과 미국의 한 저명한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가 저술한 또 다른 신화관련 책자를 현재 한국어로 번역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책들이 한국교계에 소개된다면 신화에 대한 현재와 같은 오해가 많이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도 진리 인식에 앞서가는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직 간접적으로 이 신화 사상을 설교하고 있다. 한 예로 수원 합동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조병수 교수가 지난 96년도 염광교회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전달한 신화관련 설교내용이 현재 <목회자를 위한 바이블>(http://biblenet.co.kr) <요한복음 설교 116 >에 올려져 있다. 또한 사랑의 교회 원로 목사인 옥한흠 목사가 쓴 산상수훈 강해서인 ‘하늘행복으로 살아 가는 작은 예수(국제제자훈련원, 2004)에도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자신을 닮은 작은 예수로서 갖추어야 할 인품과 생활에 대하여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273) "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산상수훈을 주시면서 특별히 순종을 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작은 예수가 되기를 소원하셨기 때문입니다” (284).

 

구태여 트집을 잡는다면 ‘작은 예수’라는 말 자체도 문제가 될수 있다. 그러나 이해 하려는 마음으로 듣는다면 이 말은 신화 관련 사상과 연관이 있다. 위트니스 리가 ‘신격(Godhead)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된다’라고 한 말은 쉽게 말해서 위 옥한흠 목사의 표현처럼 산상수훈이 말하는 삶을 사는 존재인 작은 예수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창조주처럼 경배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이 위트니스 리의 신화 사상의 요지이다.

 

결론적으로, 김기철씨는 ‘마태복음 5-7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존재가 되라’ 는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이 틀렸다며 나간 사람이다. 그는 보도 자료에서 “십자가 구속의 복음” 전파를 최대의 사명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십자가의 구속’을 기초로 하되, 거기서 더 전진하여 ‘작은 예수’처럼 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3) 위트니스 리가 ‘라이프 스타디를 성경과 동등하게 믿게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한 마디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김기철씨는 이런 허위사실을 공개적으로 유포하여 위트니스 리는 물론 (지방)교회 성도들이 마치 성경 66권 이외에 특정사람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처럼 오도한 것에 대하여 정식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이러한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 야기될 각종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피해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장로훈련III-이상을 실행하는 길(한국복음서원, 1994)에서 여러 차례 라이프 스타디를 읽음으로 성경이해에 도움을 받도록 성도들을 권면하되, 그것들은  합당한 성경이해로 이끄는 ‘도구’일 뿐임을 누누히 강조한다. 그는 그 어디에서도 김기철의 허위 주장처럼 자신이 쓴  라이프 스타디가 성경 자체 또는 성경과 동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라이프 스타디는 성경 강해서로서 “성경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성경을 열어 줄 목적으로 쓰여졌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위 책, 85).

 

(지방)교회측 성도들은 물론 심지어 적지 않은 수의 교계 목회자들까지도 라이프 스타디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라이프 스타디를 성경과 동등하게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입장을 바꿔서 말해 보자. 의식있는 장로교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 내용을 매우 중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그 사람들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성경과 ‘동등’하게 믿는다 라고 비판한다면 과연 그것이 이치에 맞는 주장인지 생각해 보라. 따라서 김기철씨의 위 주장은 상식에 어긋나고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써 일고의 가치도 없다.

 

 

4) 기성교회는 몸이 아니라 하고 한 지방에 한 교회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것도 자주 오해되는 항목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자. 과연 그리스도의 몸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함으로 그 몸의 지체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성경을 통해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우선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 27절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이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주님의 몸의 일부가 되었는가? 그것은 주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그분의 이름(인격)을 참되게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1:12), 한 몸(4:4) 즉 우주 교회의 일원이 된다(16:18).

 

그러나 아무리 큰 교단과 대형교회에 소속되어 예배당을 오고 갔다고 해도 위와 같은 실제적인 영적 체험이 없는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주님의 몸이 아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구원의 확신도 없는 이름 뿐인 교인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누가 몸인지 아닌지 여부는 그가 소속된 특정 단체가 아니라 그 단체의 구성원 각 사람 본인의 참된 영적 상태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다. 참고로 실제로 자신이 이미 몸의 지체임을 내적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누가 그것을 인정하건 안 하건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지방에 한 교회’ 라는 말은 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위와 같이 믿어서 이미 몸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모여서 교회생활을 해야 하는가 라는 몸된 교회의 ‘실행성’(practicality)에 있어서 견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장로제도를 기반으로 장로교회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는 침례제도를 중시하여 그런 교리에 동조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야 한다고 생각 한다. 이런 식으로 교회의 실행성과 관련된 이견때문에 생겨난 것들이 기존의 교파들 즉 ‘Denominations’ 이다. 물론 소위 (지방) 교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주님을 참되게 영접하여 우주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거주하는 그 지방(one city)을 범위로 해서 하나의 교회(one church)로 모이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당시에 예루살렘에 수 만명의 성도들이 있었고 그들은 편의상 이 집 저 집에서 모여서 떡을 떼기도 했지만, 성경은 그 각각을 교회들로 보아 ‘예루살렘 교회들’(복수)라고 하지 않고 단수명사를 써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the Church which was in Jerusalem)라고 한 것이 그 근거이다(8:1). 이러한 사실은 신약 서신서들이 일부 개인들에게 보내어진 것을 제외하고 거의 다 그 지방에 있는 교회에 보낸 것이라는 점에서 더 분명하다. 어떤 이는 가정교회를 말하기도 하나 최근 장로교 고신 교단은 가정에서 모임은 가질 수 있어도 가정 단위의 교회("가정교회")는 비 성경적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지방)교회측의 ‘한 도시 한 교회’론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진 주장임으로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만일 이런 성경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백보양보해서 소위 <한 도시, 한 교회>론은 일종의 (지방)교회만의 <교회관에 대한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것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은 교회론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으되 서로의 특수성을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끝으로 우리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문제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첫째, 엄밀히 말한다면 ‘특정 지방교회’는 그 도시 안에서 소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사람들만을 그 <구성원>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예루살렘 교회(8:1), 안디옥 교회 (13:1) 등의 성경 사례에서 보듯이, <그 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참된 믿는 이들 모두> <그 지방 교회 성도들>이다. 그러나 소위 (지방)교회 성도들은 이런 원칙에 따라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고, 아직 성경에서 이런 원칙을 보지 못했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본질'에 있어서는 그 지방교회 성도이되 '실행'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뿐이다

 

둘째, 우리는 사도행전 8:1, 13:1, 계시록 1:11 등에서 처럼 또한 각 서신서의 수신인인 그 지방의 교회들처럼 ‘한 지방의 교회는 그 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성도들로 구성 된다’는 원칙을 보았다. 또한 그러한 소위 ‘지방입장’ 위에 서서 로마서 12, 에베소서 4, 고린도전서 12장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이상을 실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실제 실행에 있어서는 다른 관점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포용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삶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비록 교회론에서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더 겸손히 마음을 열고 서로 배우고 온전케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5)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라는 주장은 잘못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즉 정통 기독론에 따르면,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즉 양성을 가지시며 이 둘은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성경에는 또한 이 한분 예수님을 가리켜 어떤 때는 ‘하나님의 아들’로 또 어떤 때는 ‘인자’ 또는 ‘사람의 아들’로 구별하여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차원의 구분으로 보면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가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또는 ‘거룩하지 않다’ 라고 한 것도 쉽게 말해서 <에수님의 인성 즉 ‘사람의 아들이신 부분’은 신성이 아니시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다>는 정통 고백에 따른 것이다. 만일 김기철씨의 주장처럼 성육신 당시의 예수님의 육신의 몸조차도 거룩한 신성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우리와 같은 참 사람이 아니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참고로 사도행전 13 33절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고” 라고 하신 부분은 ‘오늘’을 언제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본문 이해가 달라진다. 전후 문맥은 여기서 <오늘>은 성육신 시점이 아니라 <부활 시점>임을 보여준다. 위트니스 리는 이런 각도에서 관련 구절들인 로마서 1:3-4, 고린도 전서 15:45 등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즉 그는 부활시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향하여 오늘 너를 낳았다 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높여진 인성’(uplifted humanity)을 입으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주제는 매우 난해한 부분인데, 김기철씨는 이 점을 오해한 것이다.

 

 

6) 한국복음서원의 책자 보급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한국복음서원’은 ‘미국 복음주의출판사협의회’(ECPA)의 정식 회원으로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 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iving Stream Ministry (LSM)의 출판물들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하는 기독 출판사이다. 이 점은 지금 당장 누구라도 ECPA 홈페이지 (http://www.ecpa.org/members_voting.php) 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 그리고 한국복음서원 홈페이지(http://www.kgbr.co.kr )들을 직접 눈으로 비교함으로 확인해 볼수 있다.

 

ECPA는 한국에서도 생명의 말씀사, 규장, 예영 커뮤니케이션 같은 유수한 기독 출판사들이 국제회원으로 가입되어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단체는 엄격한 자격 심사를 통하여 소속 회원사들의 수준을 관리함으로써 그들이 펴내는 책들이 진리적으로 안전하고 복음적인 내용들임을 직간접적으로 보증하고 있다. 이런 장점으로 인하여 상당수의 국내 기독 출판사들도 이 미국 ECPA (국제) 회원이 되기 위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가 ECPA에 의하여 매우 복음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으로 추천되는데, 영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차이만 있을 뿐인 동일한 책자들이 한국 내에서 유통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김기철씨의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김기철씨는 자신의 허위사실에 근거한 무책임한 말로 인하여 한국복음서원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법적, 경제적인 책임을 전적으로 질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끝으로, 한국복음서원 책자들은 새 신자들보다는 주로 추구하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주 고객임으로, 이미 그들 스스로에게 김기철씨 못지 않은 영적 분별력이 있으므로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7) 라이프 스타디 세미나에 목회자들이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김기철씨는 기자회견에서 최근에 한국복음서원이 주관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디 세미나에 정통 교회 소속 목회자들도 다수 참석한다며 그 목회자들을 염려하는 언급을 한바 있다. 그러나 그 점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은 이미 복음서원 책자들을 오랫 동안 읽어온 독자들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김기철씨보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더 잘 알고 자원하여 스스로 찾아온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 자매가 만난 목사님은 장로교단 전직 총회장 출신인데, 20여년 이상 라이프 스타디를 읽고 설교에 참고했노라고 말했다. 현재 목회자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디 세미나가 있다고 소개하니까 그분은 언제 한번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8) 교리적인 차이에 따른 오해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오해함에서 오는 이단 변증 전문가들과의 이견에 대해서 해명하고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또는 (지방)교회는 지엽적인 진리 인식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갖는 것은 사실이나 성경의 핵심 교리 이해에 있어서 정통이고 성경적이다 라는 것이 최근의 평가이다.

 

과거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본문 내용들을 짜집기하여 만든 ‘갓맨’ 책자 등을 근거로 한 때 월터 마틴 등이 위트니스 리를 이단시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후 지속적인 상호 대화와 토론을 거친 후, 바로 위 월터 마틴이 설립한 미국의 저명한 이단 변증 단체들인 ‘Christian Research Institute(CRI)의 현재 대표(행크 해나그래프) Answers In Action(AIA)의 대표(그레첸 파산티노) 등이 (지방) 교회가 정통교회임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풀러 신학교 측도 리차드 마우(총장), 하워드 로웬(신학부 학장), 벨리마티 커케년(조직신학자) 등 핵심 관계자가 참여한 약 2년 이상 심도있는 조사 연구 및 상호토론 끝에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음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 된 바 있다.

 

특히 CRI의 행크 해나그레프와 미국 풀러신학교 신학부 학장인 하워드 로웬 박사 그리고 벨리마티 교수 등은 지난 2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목회자 신문이 주관하는 신학 심포지엄과 인터뷰에서 ‘(지방)교회는 이단이 아니다’ 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과거에 (지방)교회를 오해하던 단체가 상호 마음을 연 대화와 토론 끝에 나온 결과이어서 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도 약 10여 년 전에 (지방) 교회측과 통합측 이단 상담소장이었던 최삼경 목사 간에 약 3년에 걸친 진리토론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지방) 교회 인도자들도 과거에 다소 폐쇄적이었던 태도를 바꾸어 지난 1-2년 동안 한국교계 및 신학계 인도자들과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마음을 연 대화를 시도해 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주님의 한 몸의 지체들로서 머리이신 그분의 인도를 따라 그분의 한 몸을 세워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하여 열려 있음을 언급해 두고자 한다.

 

첨부자료:

 

# 자료 1 – 미국 이단변증 단체 인 AIA(대표 그레첸 파산티노)의 성명서

                           미국 이단 변증 단체 AIA(Answers In Action) 
                      지방 교회들과 LSM(Living Stream Ministry)에 대한 입장

                            © Copyright 2007 by Gretchen Passantino

기독교 변증론 분야의 전문가이자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단체AIA(Answers In Action)의 공동창립자 및 책임자인 그레첸 파산티노(Gretchen Passantino), 같은 분야의 동료이자 CRI (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대표인 행크 해너그래프(Hank Hanegraff), 그리고 CRJ (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편집장인 앨리어트 밀러(Elliot Miller)와 공동으로3년에 걸쳐 진행된 신중한 조사, 대화, 검토 및 신학적 분석의 결과, 워치만 니(Watchman Nee)와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가르침과 LSM(Living Steam Ministry)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들은 정통 기독교 신학을 수용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기독교 운동의 한 부분이며, 신학적으로 이단성의 문제가 있다거나, ‘이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결론은 ‘이단’이라는 용어에 관해 작고한 월터 마틴 박사(Dr. Walter Martin)가 신흥 이단들(The New Cults)이라는 책에서 정의한 의미, 그리고 작고한 로버트 파산티노(Robert Passantino)와 그의 부인 그레첸 파산티노가 자신들의 공저인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이단들에 대한 답변들(Answers to the Cultist at Your Door)이라는 책에서 정의한 것처럼 순수하게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하더라도 동일함을 밝힙니다.

이번 재평가 작업은 로버트 파산티노와 그레첸 파산티노 부부, 그리고 월터 마틴 박사가 최초 평가를 실시한 이후 20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으며, 최초 관찰과 비교할 때 놀랄 만큼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최초에 파산티노 부부와 월터 마틴 박사는 이러한 운동이 비기독교적 이단은 아니지만 여전히 워치만 니의 저작, 특별히 위트니스 리의 저작들은 모순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러한 운동의 신학적 배경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이해는 출판물을 조사하여 얻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파산티노 부부와 월터 마틴 박사가 1981년 이후에 이러한 운동에 관하여 직접 글을 쓴 적은 없지만, 수년 동안 CRI는 이러한 운동에 관하여 파산티노 부부와 월터 마틴 박사가 최초에 제기했던 핵심적인 비판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여러 편의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습니다.

3년 전, 이러한 운동의 출판 업무를 담당하는 LSM은 대화 제의와 함께 그들의 가르침과 신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요청해 왔고, (남편이 2003년 작고한 후로 AIA를 인도한) 그레첸 파산티노, (월터 마틴 박사가 1989년 작고한 이후로 CRI를 인도한) 행크 해너그래프, 그리고 (초창기부터 CRJ의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앨리어트 밀러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초기에 여러 단체들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내놓은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파산티노 부부와 앨리어트 밀러, 행크 해너그레프는 단지 해당 단체들이 출판한 서적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평가 작업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관찰과 교제를 통해서 과연 상대방의 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작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최근CRI AIA 는 모두, 논쟁의 소지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에 대한 공식적인 비평서를 출판하기에 앞서 그들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파산티노는 “이러한 직접적인 상호 교제의 원칙은 우리가 전향적으로 사탄주의나 신흥 이교주의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하면서, 그리고 외부에 있는 기독교 변증론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전세계 하나님의 교회(the Worldwide Church of God)나 기타 운동들 및 쟁점들에 대해 파헤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이 펴낸 책자에 항상 의문의 여지가 있어 왔고, 변증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이한 평가를 받은 이 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 년 동안 CRI AIA는 지방 교회들이 출판한 모든 책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었고, 지방 교회들에서 인도하는 이들과 직접 만나 수백 시간에 걸쳐 대화를 가짐과 동시에 아무런 제약 없이 일반 성도들과 만나서 대화를 가졌습니다. 아울러 CRI AIA는 수백 시간에 걸친 신학적 분석과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다수의 신학 대학원에 요청하여 저명한 신학자들, 성경학자들의 자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마친 후 파산티노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운동이 소유한 믿음의 내용들에 대해 훨씬 더 자세하고 포괄적인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운동에 대해 제기한 과거의 비평들이, 비록 여타 기독교 변증론자들이 내놓은 것들에 비해 부드러운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운동의 본질이 갖고 있는 정통성을 오해하고 잘못 제시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파산티노 부부는 두 권의 소책자를 통해, 그리고 월터 마틴 박사는 신흥 이단들이라는 책을 통해 비록 이 운동이 비기독교적 이단은 아니지만,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은 여전히 모순적인 면이 있으며, 최악의 경우는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른 연구자들은 이 운동에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했고, 이 운동이 심리적 병폐나 사회적 병폐 심지어 일탈적인 범죄 행위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경고하였으며 또한 신학적으로 이단이라는 혐의도 추가되었습니다. 가깝게는 1999년에 존 앵커버그(John Ankerberg)와 존 웰던(John Weldon)이라는 두 저자가 이단과 신흥종교 백과사전(Encyclopedia of Cults and New Religions)에서 이 운동을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단체들에 포함시켰으며, 신학적으로도 이단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해당 운동이 중국 본토에서 시작되었고, 이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많은 믿는 이들이 여전히 중국 본토에 남아 있는 관계로, 무신론을 제창하는 중국 공산정부는 이 운동과 관련된 중국 내 그리스도인들을 형사 고발하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러한 부정적인 보고서들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앵커버그와 웰던의 책에 담긴 언어도단(言語道斷)적인 비난들은 십수 년 전 닐 더디(Neil T. Duddy)의 갓맨(The God-men)과 같은 책자에서 제기된 것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중국 본토에서의 교회 활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당국의 제한과 고발 및 유죄판결에 직면해야 하는 이 운동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극도로 위험이 된다는 것을 이 운동은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위협에 대항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지방 교회의 핵심적인 교사들은 - 비록 이 운동은 정식 계급 제도상의 인도직분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특정 구성원들이 그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기독교 변증론 분야를 선도하는 다양한 인사들에게 대화 및 재평가를 요청하였습니다. AIA CRI는 이 기회를 수용하여, 공동으로 재평가 작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근년에 지방 교회들과 LSM은 미국 기독교계에서 진일보적으로 폭 넓은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우선 풀러 신학교(Fuller Seminary) AIA CRI 가 수행한 것과 유사한 대화 및 검토 작업을 실시하여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은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대표하고 있습니다.(풀러 성명서, Fuller Statement)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아울러 LSM은 미국복음주의출판협의회(Evangelical Christian Publishers Association, ECPA)에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해당 단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AIA CRI 가 지방 교회 인도자들 및 LSM과 가진 대화에서, 양측은 모두 파산티노 부부와 월터 마틴 박사가 과거에 내린 대단히 비판적인 평가가 여러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으나 그 누구에게도 고의적인 왜곡이나 악한 의도는 없었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부적절한 비판들을 가져온 더 큰 이유는 상호간의 직접적인 대화 부족과 미국 내 기독교와 중국 내 기독교 사이의 문화적, 언어적, 교회론상의 차이, 그리고 양측 모두의 종교 분석적 검토 기술이 상대적으로 미숙했던 점이라는 데 공통된 결론을 얻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은 몇몇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오늘날 동방정교회가 가르치는 내용들과 매우 유사합니다.”라고 말을 꺼낸 파산티노 여사는, 계속해서 “그러나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는 변화를 통한 개인적인 성화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이 교부들이나 동방정교회가 가르쳐온 신화(theosis)라는 가르침과 유사하다거나 그것을 채택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70년대에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서구의 단체들이 이 주제에 대해 주창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에 관하여 광범위한 지식을 소유했던 저로서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제게 친숙하지 않았던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동방정교회의 신학과 동일시하는 것보다 그러한 단체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되어왔던 가르침에 대해 20년 만에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면서, AIA CRI는 논란과 관련된 부분들을 그들의 글의 전체 맥락과 아울러 정통 신학의 전체적인 틀 안에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파산티노 여사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그 옛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 중에서 모순적이라고 느꼈던 항목들은 사실상 이단적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아니라 충분히 정통 신학의 범주 안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해답을 제시한 것은 바로 직접적인 대화였습니다. 파산티노 여사, 해너그래프, 밀러는 지방 교회 인도자들과 처음 만나자마자 지방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동료 믿는 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파산티노 여사는 “그들은 정통 신학을 확증함과 동시에 이단을 단호히 거절했는데, 나는 자신들의 신학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직접적인 교제가 이들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AIA CRI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지방 교회들, LSM의 핵심적인 교리들이 전적으로 정통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을 확증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AIA CRI는 몇몇 부차적인 가르침들과 실행들에 있어서는 이들이 미국의 여러 복음주의적 교회들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온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AIA CRI 2007년 후반에 지방 교회의 가르침들에 관한 연구 결과를CRJ 에 실을 예정입니다. 한편, LSM이 발표한 장문의 교리 해설서인 ‘풀러 신학교 측과 대화 시 제출되었던 (지방) 교회 신앙 변증서’는 지방 교회들의 핵심적인 교리가 갖고 있는 정통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교리 중 부차적인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여타 그리스도인 단체들에게는 크게 문제시되었던 부분에 관해서도 이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자료2:  <목회자를 위한 바이블넷 요한복음 설교 116>

http://biblenet.co.kr/bbs/view.php?id=sermon_new_01&no=270

 

 

말씀이 육신이 되어 ( 1:14) -조병수 교수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96.12.20. 염광 성탄절 설교)

 

 주후 180년 경이었습니다. 지금의 불란서 리용 지역에서 기독교에 대한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때 리용의 감독은 90세의 고령인 포티누스 (Pothinus)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포티누스는 몸이 무척 쇠약해서 간신히 숨을 쉴 정도였습니다. 그의 육신은 고령과 질병으로 말미암아 거의 사그러져가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은 포티누스가 병약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과 발로 그를 공격하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손에 잡히는 대로 그에게 마구 던졌습니다. 포티누스는 감옥에 갇힌 후 이틀이 지나서 결국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Eusebius, HE,5,1).

 

  포티누스를 이어서 이레니우스 (Irenaeus)라는 사람이 리용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는 당시에 유행하던 이단들과 싸우기 위하여 거대한 이단논박서를 저술하였습니다. 이레네우스는 이 책에서 한편으로는 로마의 박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가 괴롭힘을 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단의 성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혼돈함에 빠지는 때에 어떻게 하면 이 둘을 한꺼번에 이기고 극복할 수 있을까 사색을 하였습니다. 이레네우스가 깊은 연구 끝에 발견한 사실은 박해와 이단을 이기는 길 가운데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해하는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로 오신 성육신의 의미를 바로 이해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와 이단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레네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오신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 위함이다" (Irenaeus, adv.haer. 5권 서론). 우리는 이 말을 조금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신자의 신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예수의 성육신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성육신의 결과로 일어난 우리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신분

 

  우리는 많은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신분에 관한 문제에 머물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에 어떤 분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후에 어떤 분이 되셨는가 등등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성육신 이후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화를 버리시고 인간의 비천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레네우스의 말대로 하자면 "그가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4).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하나님의 철저한 비하가 성육신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2. 우리의 신분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성육신하신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예수의 성육신을 믿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위대한 일인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점에 있으며 동시에 예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비천하고 천박한 인간이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레네우스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4).

 

그런데 문제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본문의 흐름을 계속해서 따라가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6).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충만은 우리의 충만으로 연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만하시기에 우리도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의 충만은 곧 우리의 충만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보면 예수의 성육신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고 말했던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성육신에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육신이 의미하는 바의 절반 밖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인간의 철저한 승귀가 성육신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3. 결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많은 아들을 얻었습니다. 한 아들을 잃는 하나님의 손해는 많은 아들을 얻는 하나님의 이익입니다.

  

이레네우스는 성육신 사상을 발견하였을 때, 그리고 리용의 성도들이 이레네우스의 성육신 사상을 배웠을 때 극심한 박해와 극렬한 이단 앞에서도 꿋꿋하게 견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레네우스보다 대략 백년 쯤 후에 등장한 유명한 교회의 신학자인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에게 이레네우스의 성육신 사상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타나시우는 "성육신에 관하여" 라는 성육신론을 저술을 했는데 거기에서 이레네우스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기 위함이다" (Athanasius, de incar. 54,3). 아타나시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앞에서 신자의 진정한 신분이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를 신적인 존재로 만든다. 인간의 철저한 승귀!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며 이단을 만날 때 고난과 이단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었던 성육신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가지고 오신 성육신를 통하여 얻게 된 그 높은 신분을 확인할 때 박해를 이기며 이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현실을 이겨나가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를 다시 깨달을 때 주어집니다.

 

 , 다시 이레네우스의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만듭니다. ()

 

 

형제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발에 신발이 작아 안 맞으면 신발을 바꾸어야 할터인데, 자꾸 작은 신발에 맞추려고 발을 억지로 깍아 넣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제한된 고정관념이 성경의 계시들을 오해하거나 다 담아내지 못할 때는 관념을 깨뜨리고 성경의 빛을 받아 들이면 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자신의 del modify 2008/07/22
형제
고정관념에 안 맞는다고 잘라내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오률르 범했고, 현재도 일부 이단 감별사들이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del modify 2008/07/22
작성자 비밀번호
현재/최대 300Byte 한글 150자, 영문 300자
이전글 : [공지]  토론방 공지사항 [4]  114021.JPG (Size : 232.55 KByte)
다음글 :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글 [9]
 
묻고 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