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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성 어거스틴과 지방교회의 삼위일체 주장은 여전히 다릅니다. 작성자 참사랑
작성일 2007년 8월 2일 조회수 1,053
첨부파일  

아래의 글을 통해서 <그 영>의 신론을 지탱해주는 핵심적인 성경말씀(요7:39)에 대해 성 어거스틴과 지방교회의 주장이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제4권 29.


주께서 제자들의 얼굴에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요20:22) 어떤 다른 뜻이었는지를 나는 알수 없다. 몸으로 내쉬신것, 숨이 몸에 닿는 감각-이런것들은 성령의 본질이 아니고, 성령이 성부에게서 뿐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것을 알리는 적합한 상징이었다.  아무리 정신없는 사람이라도 주께서 그들에게 숨을 내쉬셨을 때 주신 영과 승천후에 보내신 영이(행21:1-4) 달랐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곧 성부와 성자의 영이며,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성령이시다.(고전12:6)


...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신 말씀을(요7:39)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성령을 특별히 주신 것 또는 보내신 것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종류의 일이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런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 전에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면, 선지자들은 무엇으로 충만해서 말했는가? 그들이 성령으로 말했다는 것은 성경이 분명히 말하며 여러 곳에서 알린다.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함을 입으라”고 했다. 그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해서 그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마리아도 성령이 충만해서 자기 태중에 있는 주님에 대해서 이런 일들을 예언했다.(눅1:15,41-79).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이 충만해서 어린 아기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인정했다.(눅2:25-38)

그러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을 주신다. 허락하신다, 또는 보내신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결코 없는 특별한 종류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참으로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언어를 말했다는 기사를 볼수 없다. 그러나 그때에는 성령이 오신 것을 눈에 보이는 표적으로 알리며,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언어로 구성된 세계 만민이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게 되며, 시편에 있는 말씀이 실현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시편에 이르되,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했다(시19:3,4) (165p)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구조가 갖는 신학적 객관성에 관하여 43페이지 (조성재,개혁주의성경연구소)


d.삼위일체 하나님과 분리할수 없는 경륜사와 성경이해

어거스틴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구조적 이해는 오직 성경에 근거하면서도, 전체 성경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보존하려는 성경적 경건성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전제와 제한이 많으면서도 복잡하고 불공평 한 듯 보이는가 하는 점은 바로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또는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체 성경과 모순이 되지 않으면서도 성경 진리를 보존하는 차원의 구조가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구조에 따라서 자체에 관한한 성부,성자,성령은 분리할 수 없이 존재하신 대로, 그렇게 분리할 수 없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삼위일체는 분리할수 없이 역사하신다는 점이다. 부카누스는 삼위일체의 사역을 내적사역과 외적 사역으로 나누고, 그중에 외적 사역을 비분리적 사역이라 명명하면서, “신성 전체가 피조물에게 수행하는, 또는 세 인격이 함께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수행하는데, ... 신의 외적사역은 세 위격에게 공통적이기 때문에 비분리적 사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 외적 사역에 있어서 원칙을 “삼위의 외적 사역은 분리되지 않는다”로 삼았다. JamesUssher의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은 첫째나 마지막도 없고 전에 오거나 뒤에 오는 것도 없다. 이들 모두가 영원한 대로 그들 모두가 동시순간적이다.”고 말하므로, 우르시누스,폴라누스등 개혁주의 내의 공통 고백에서 뿐만 아니라 루터주의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신학자들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피조세계와 관계해서도 마찬가지로 성부,성자,성령은 하나요 동일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해하되, 피조물의 특성상 삼위일체가 계시될 때에는 제한적으로 분리되어 계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공간적으로 같지 않고 특별히 물질적인 피조물 형태로 말미암아 분리되어 계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계시의 단계에서 삼위일체가 유사를 통해, 혹은 물질적인 공간이나 동작을 통해 분리되어 표현되더라도, 그것이 삼위일체의 자신의 고유한 것이나 상호자체 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은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또한, 개별적인 피조세계에 연관되어 그런 분리된 형태의 역사 있고 성부,성자,성령의 고유한 것이 계시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따로따로 독립적으로 이해할수 없으며, 근원적으로 삼위일체의 공통적인 사역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에 어거스틴의 성경이해에 대한 틀이 놓여있다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표현중에서 많은 부분이 위격적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다음과 같은 어거스틴의 언급은 중요한 의의를 오늘에도 갖는다.


“적어도 육체적으로 우리가 소리내어 우리의 음성에 의해서 분리되어 불려지는 것처럼, 자체의 낱말의 음절들이 채워지는 성부,성자,성령은 특별히 시간적 간격으로 확실히 분리하여 구별하지 않고는 칭하여질 수 없다. 당연히 그들이 존재하는 실체에 있어서 성부,성자,성령 삼위는 시간적 운동도 없이 모든 피조물에 초월하여 시간과 장소의 어떤 간격도 없이 스스로 하나요 동시에 한 실체요 영원부터 영원까지 같으시며 진리와 사랑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영원자체이다.

그러나 성부,성자,성령이 내 음성들로 분리되어서 동시에 말할 수 없고 볼수 있는 문자들로 장소적으로 분리된 간격들을 좁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그렇게 삼위일체는 동시에 역사되고, 그들의 각각이 각 위격들에 해당될지라도, 성부의 음성,성자의 육신, 성령의 비둘기라고 한다. 그런 유사들을 통해서 그 자체에 있어서 분리할 수 없는 삼위일체는 볼수 있는 피조물의 형태에 의해 분리되어 계시지만, 삼위일체의 역사는 성부나, 성자 혹은 성령에 고유하게 속한 것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개별적인 것들에 있어서도 분리할수 없음을 인식하게된다.


이런 근거위에서, 가령 요한복음2:22의 숨을 내면서 성령을 받으라는 표현은 성령이 성부에게서 뿐만아니라 성자에게서도 나오신다는 것을 알리는 적합한 표징에 의한 증거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사도행전2:1-4의 오순절 성령의 부어주심이나 요한복음7:39의 “성령이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는 표현은 이전에 없었던 성령이 이제 막 부어주시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이전에도 계셨지만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셨다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였다.(43p-46p)


참사랑
이단, 삼단을 얘기하기 전에,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거스틴과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가 다르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del modify 2007/08/02
형제
문제는 오늘날 한국 개혁교단 내에서 삼위일체론을 대변하시는 분들의 삼위일체론도 어거스틴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제 요지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판단한다는 그 판단기준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정통교리라든지 정통신조가 기준이라는 말은 너무 어설 del modify 2007/08/02
형제
프고 모호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김명용, 최삼경, 차영배 님들이 정통신조 정통교리를 내세우지 않아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46468;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참사랑 님의 삼위일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검증이 요구됩니다. 어거스틴과 개혁교단 총회장을 6번이나 지낸 앤드류 del modify 2007/08/02
형제
머레이가 요 7:39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어느 사람의 말이 표준입니까? (지방)교회의 입장을 묻기 이전에 판단기준부터 통일시키고 그것이 개혁교단 전체가 지지하는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재는 자가 들쭉 날쭉 하는 상황에서는 그 자로 쟀더니 20 센티니까 미달이다 아니다 30센티니까 정상이다 del modify 2007/08/02
형제
라는 시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준이 되는 자나 저울부터 제대로 통일시켜 놓고 그 다음에 저울에 다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del modify 2007/08/02
형제
참사랑님은 아직 (지방)교회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전반에 대해 충분한 이해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운 단편을 지난 글들에서 보았습니다. 어거스틴의 상호내재 관련 언급에 대해서 혹시 공부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에 대한 참사랑님의 의견을 del modify 2007/08/02
형제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에게 어거스틴의 상호내재 개념을 말해 달라고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을 언급하며 지방교회 신론을 거론하시니 어거스틴을 얼마나 아시는지 여쭤보는 것입니다. 힌트만 드린다면 10여년 전에 최삼경 목사님과 (지방)교회측이 공개토론을 할 때 (지방)교회 측에서 어거스틴의 상호내 del modify 2007/08/02
형제
재 개념을 인용하여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지방)교회 삼위일체론을 비판하시려거든 판단 기준이 되는 그 내용이 성경진리에 부합된다는 증거를 먼저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참사랑님의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더 구체적으로 요7:39, 고전 15:45에 대한 del modify 2007/08/02
형제
참사랑님의 소화된 그러나 근거가 명확한 해석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 해석을 놓고 비판적인 언급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것이 성경적임이 입증되면 그 다음에 그 기준으로 (지방)교회든 어디든 비판하기로 하지요. del modify 2007/08/02
형제
참고로 이순태저 '현대성령론 평가'라는 책을 보면, 소위 영적 거장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토레이, 로이드존스, 차영배 박사, 존 스토트, 개핀 교수, 존 오웬, 서철원 교수의 성령론이 조금씩 다릅니다. 진리는 하나인데 왜 이처럼 다를까요? 이런 경우 정통신학 또는 정통신조가 기준이다 라고 한다면...이들은 정통신학자 del modify 2007/08/02
형제
가 아니란 말인지 또는 이분들은 정통신조를 배척한다는 말인지...저의 거듭된 문제제기의 요지를 아시겠습니까? ............서로 이해하는 차원의 대화는 얼마든지 환영이나 지금 참사랑님처럼 자신은 옳고 너희들은 틀렸으니 내가 바로 잡아주거나 너희들 틀린 것을 폭로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삼가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시는군요. 비판하려거든, <정통이되는 기준부터 정립하고서 비판하라>는 말씀이신데, 이해는 됩니다. 헌데, 그것이 이 시점에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여, 원천봉쇄를 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제가 왜 그런것을 해야하는지...자..그럼, 이렇게 말씀을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드리지요. 말씀하시는 바를 인정해서, 저는 아직 부족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이상이 부족한 그냥 평범한 믿는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난 제글속에서 저는 아직 어느쪽으로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도 드렸습니다. 또한, 이곳 게시판은 지방교회에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고 토론하는 곳이 아닌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가요? 그것이 단편적이던, 부족하던,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저의 질문에 너무들 민감하시고, 저를 마치 정통교리의 대표자를 만들어 가시는군요..이런 대화법이라니...ㅠㅠ..아뭏튼 부족한 사람을 인도하신다고 생각하시고, 저의 질문과 글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에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성의 있는 답변을 해주신다면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읽어본바로는 윗글에서는 분명히 어거스티과 지방교회가 달라보이는데, 저의 이해가 잘못되었습니까? 잘못되었으면, 가르쳐 주십시요.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저를 더이상, 무슨 교리나 신학의 대표자를 만들지 마시고,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한바를 질문하는 것이니, 답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것마저도 안된다면, 제가 어떡해야 합니까? 혹시, 이곳은 공부를 한사람이 아니면, 대화를 하기가 어려운 곳입니까? 그럼, 이런 게시판을 운영하는 의미가 무엇인지...ㅠㅠ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그동안 제가 올린 글이나 댓글등에서, 지방교회신학에 대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본래 생각은 <그 영>에 대해서 묻고,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또한 기존신학과는 어떤차이가 있길래 이단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알고자 하였던 것인데, 많이 왜곡이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이해해주시고,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나 신학적인 지식의 폭이 넓으신 분들께서, 저의 질문이 조금은 유치해 보이시더라도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헌데, 지금도 저의 <그 영>에 대한 의문은 여전합니다. 또한, 기준통일을 문제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삼으시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와는 어떻게 다른지..앤드류 머레이의 신학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핵심구절들이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합니다. 지방교회 어느분이시라도, 답변을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위의 글로 볼때에는 분명히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달라보이는데, 저의 이해가 부족한것일까요? 필요하시다면, 어거스틴의 많은 글들에서 발견되고 있으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참고로, 어떤 형제님의 조언이 생각납니다. 늘 이런 토론을 하다보면, 주님의 부요함을 잃어버릴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심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많은 님들께 늘 주님의 은혜가 넘치길 바랍니다. ^^ del modify 200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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