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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re: 성 어거스틴과 참사랑님의 삼일성이 다르지요. 작성자 Hannah
작성일 2007년 8월 2일 조회수 1,079
첨부파일  

 우리 모두 다 바쁜 사람이지만, 주님께서 열어주시는 시간만큼 또 분량만큼 서로 토론할 수 있기 원합니다.

참사랑님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이론’을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틴에 대한 내용도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5가지로 말해보겠습니다. 앞의 3개는 성령에 대한 것이고 2개는 삼일성에 관한 것입니다. 님의 글의 요점들만 뽑아서 답글을 써보겠습니다.

 


1.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요20:22)... 숨을 내쉬셨을 때 주신 영과 승천후에 보내신 영이(행21:1-4) 달랐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오심에는 두 방면이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과 행2:1-4절의 차이는 본질적인 영과 경륜적인 영의 차이입니다. 전자는 주님 자신의 신성한 본성을 제자들에게 생명의 영, 곧 영적 존재와 생활을 위하여 그들 안으로 불어넣은 것을 말합니다. 후자는 경륜적인 영으로 제자들의 사역과 움직임을 위임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지요.  예를들어 누가복음1:15절의 침례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할때의 충만은 ‘플레도(4130)’로 외적으로 충만함을 말합니다. 침례요한은 여자가 낳은자중에 가장 큰 이 이지만 그는 신약의 믿는이들처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내주하시는 생명으로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이 성령의 오심은 안으로, 위로 밖으로의 두 방면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생명을 위해 내적으로 믿는이들에게 호흡되는 방면과, 경륜적으로는 능력을 위해 외적으로 충만케 되는 방면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호흡과 바람은 같은 성분이나 공기가 선풍기를 돌리면 바람이 되는 것처럼, 성령은 같으나 두 방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물론 믿는이는 성령의 두방면을 다 체험해야합니다.



2.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해서... 마리아도 성령이 충만해서...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이 충만해서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인정했다.


==> 위의1번을 이해한다면 쉽게 해결됩니다. 주예수님께서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듯,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것은 영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성이 사람안에 내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눅1:35절의 마리아는 그녀 위에 임하신 성령과 그녀를 덮는 지극히 높으신 능력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과 부활사이의 과도기적인 시기의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귀신들을 쫓아냈지만,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받아 귀신들을 쫓아내었으며, 그들은 성령에 의해 귀신들을 쫓아냈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3. 그러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을 주신다. 허락하신다, 또는 보내신다고 하는 것은 이전에 결코 없는 특별한 종류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이 아닌가? 참으로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언어를 말했다는 기사를 볼수 없다. 그러나 그때에는 성령이 오신 것을 눈에 보이는 표적으로 알리며, 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행2:1-4절에 제자들에게 부어진 영은 이미 제자들은 본질적인 생명의 영을 받은 상태에서 ‘하나’로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며 이를 인하여 ‘경륜적인 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 다른 방언들.. 이러한 것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요7:39절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영광을 받으심)으로 믿는이 안에 ‘생명의 영’ 거듭나게 하는 ‘본질의 영’으로 들어오실 수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4.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구조가 갖는 신학적 객관성에 관하여 43페이지 (조성재,개혁주의성경연구소)

...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구조에 따라서 자체에 관한한 성부,성자,성령은 분리할 수 없이 존재하신 대로, 그렇게 분리할 수 없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삼위일체는 분리할수 없이 역사하신다는 점이다. 부카누스는 삼위일체의 사역을 내적사역과 외적 사역으로 나누고, 그중에 외적 사역을 비분리적 사역이라 명명하면서, “신성 전체가 피조물에게 수행하는, 또는 세 인격이 함께 창조와 구속 사역에서 수행하는데, ... 신의 외적사역은 세 위격에게 공통적이기 때문에 비분리적 사역이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 외적 사역에 있어서 원칙을 “삼위의 외적 사역은 분리되지 않는다”로 삼았다. JamesUssher의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본질은 첫째나 마지막도 없고 전에 오거나 뒤에 오는 것도 없다. 이들 모두가 영원한 대로 그들 모두가 동시순간적이다.”고 말하므로, 우르시누스,폴라누스등 개혁주의 내의 공통 고백에서 뿐만 아니라 루터주의자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신학자들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 저는 이 모든 말들에 아멘합니다. 성부,성자,성령은 내적사역으로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존재하십니다. 또한 외적 사역 역시 삼위는 분리할 수 없는 비분리 사역을 합니다. 창조와 구속사역에서도 삼위는 결코 분리될 수 없지요. 사람은 한 인격에 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세 위격에 한분(하나)이십니다. 아버지의 택함과 예정 역시 아들과 성령이 참여하셨고, 아들의 구속 역시 아버지와 성령이 참여하셨음을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5. 당연히 그들이 존재하는 실체에 있어서 성부,성자,성령은 특별히 시간적 간격으로 확실히 분리하여 구별하지 않고는 칭하여질 수 없다. 당연히 그들이 존재하는 실체에 있어서 성부,성자,성령 삼위는 시간적 운동도 없이 모든 피조물에 초월하여 시간과 장소의 어떤 간격도 없이 스스로 하나요 동시에 한 실체요 영원부터 영원까지 같으시며 진리와 사랑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영원자체이다.


그러나 성부,성자,성령이 내 음성들로 분리되어서 동시에 말할 수 없고 볼수 있는 문자들로 장소적으로 분리된 간격들을 좁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그렇게 삼위일체는 동시에 역사되고,


==> 여기에서 님이 의구심을 품는 ‘시간적 간격’이라는 말을 유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앞구절에 ‘그들이 존재하는 실체에 있어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부,성자,성령의 삼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들의 존재의 실체에 있어서 시간적 간격이 없습니다. 저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가 동시에 존재하시고, 상호 내재하심을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삼위의 존재가 경륜을 위하여, 사역을 위하여 움직이실 때도 본질적인 삼일성은 역시 시간적으로 분리나 구별이 없습니다. 참사랑님이 이 시간성을 가지고 (지방)교회를 이해할때에, 본질적 삼일성은 시간에 분리가 없고, 시간 분리가 없는 본질적 삼일성이 끝나고 경륜적 삼일성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간안에 나아오시는 것(성육신 이후)은 경륜적 삼일성이라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 삼일성은 시간에 관하여 영원히 분리가 없는 영원부터 영원의 동시 존재이십니다. 이러한 분이 시간안에 나아오심이 경륜적 삼일성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님의 발췌문을 읽어본 결과, 어거스틴은 우리가 말한 삼일성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참사랑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시간의 존재의 구별과 분리가 없는 분이 시간안으로 나아오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님의 글에서 아우구스티누스나, 어거스틴은 맞고, 이그나티우스, 이레니우스, 힙폴리투스, 터툴리안...은 틀리는 듯한 인상을 갖게 쓰셨던데, 사실은 본질적 삼일성과 경륜적 삼일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님이 틀린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어거스틴은 본질적 삼일성을 강조한 것이고, 이그나티누스, 이레니우스, 힙폴리투스, 터툴리안은 본질적 삼일성 이전에 삼위의 기능과 움직임, 활동등을 말하는 경륜적 삼일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님은 다시 차분히 연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참사랑
한나님의 답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연구토록 합지요. ^^ 헌데, 윗글에 대해서 역시 제가 반응했던 대로이군요. 이제야 왜 어거스틴과 같다고 오해를 하는지에 조금은 알것도 같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이 부분을 제가 표현해내기를 소망해봅니다. ^^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한나님께서 <<참사랑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의 시간의 존재의 구별과 분리가 없는 분이 시간안으로 나아오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뿐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셔야 할것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나님이 오해를 하신것 같습니다. 저는 말씀하신것처럼 이해하고 있지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한 글의 핵심은 여전히 잡지 못하시는것 같습니다. 겉돌고 있다는 말이지요..좀더 숙고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역시 지방교회의 관련책은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성령의 두방면은 위트니스 리의 '성령' 제4장 125p~136p에 언급된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미 예전에 읽었었지요. 또한, '형제'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참..그러고보니..위트니스 리의 '출애굽기4"의 <거룩한 관유>에 대한 글 '227p~297'까지도 여러번 읽었었네요. ^^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님이 말씀하신, 상호내재 및 어거스틴을 인용했다는 지상논쟁(1) 72p~73p와 양성에 대한 mingling를 얘기하는 레위기2:4을 인용(76p)하는 것도 몇번이고 읽었던 책입니다. 윗글에 대한 내용은 78p~79에 잘 설명되어 있구요..그럼에도, 저의 의문은 여전하더군요. 앞으로는 제가 읽었던 글을 답습하는 것보다는 좀더 del modify 2007/08/02
참사랑
핵심이 접근되어 가는 대화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저역시 좀더 제자신을 살피고, 연구하여 혹시라도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고칠 용의가 있습니다. 윗글에 대한 답글은 별도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del modify 200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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