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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re:참 사랑님께 질문 겸 부탁을 드립니다.(답변) 작성자 참사랑
작성일 2007년 8월 13일 조회수 1,024
첨부파일  

권면 하신 글들을 대강리뷰하고, 주제와 관련된 부분은 몇번이고 읽어보고 숙독하였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우선 간단하게 답을 합니다.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

1. 님은 앤드류 머레이가 예수께서 부활 후에 '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영'이 되셨다는 언급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의 영’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부활 후에 ‘신적이면서 인간적인 영’이 되셨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본문을 살펴서 별도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2. 앤드류 머레이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가 다를 경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답변): 앤드류 머레이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가 다를 경우, 어느 누구의 것이 성경적인지를 먼저 살피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보다 더 권위에 올 수가 없습니다. 제가 현재로 파악하기로는, 앤드류 머레이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3. 님이 보는 요한복음 7:39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신 고로 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는 문맥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답변): 위 본문에서의 <그 영>은 바로 앞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그(예수)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임하여 계셨지만, “저희”(제자들)에게는 임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임하시게 될 성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간단한 문맥입니다.

또한, 39절 두곳의 '그 영'에 대한 헬라어를 살펴보면, 뒷부분의 '그 영'은 고유명사로서의 <그 영>이 아니고, 앞구절의 '그를 믿을 자의 받을 그 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문법적 지시사로서의 '그'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위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식으로 되려면, 뒷구절의 <그 영>은 오히려 <그 그영>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7:38-39의 <그 영>이 저들에게 있지 아니하였다고 할 때 <저들>은 원문상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라는 말을 넣어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해석이 된다고 봅니다. 지방교회처럼 <그리스도가 그 영이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도 지방교회의 그런 식의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4. 고전 15:45의 생명주는 영은 님이 보시기에 2격(주 예수님)입니까? 3격(성령님)입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답변): 고전15:45의 “생명주는 영”은 당연히 삼위의 2격입니다. 그 문장 자체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대조하고 있고, 2격이 되는 ‘마지막 아담’이 ‘살려주는 영’이라고 하였으니, ‘살려주는 영’은 당연히 2격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문장 구성에 있어서 A=B라고 할 때에 주격인 A가 2격을 나타내는데, 그 보어인 B가 3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그것은 위격의 혼동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2위와 3격은 분리되지는 않지만, 혼동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단지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15:45은 분명히 ‘생명주는 영’을 ‘2격’으로 보아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 3격으로 보게 되는 일이 있다면, 2격과 3격의 일치됨을 기본문법을 파괴하면서까지 주장하려는 무언가 속셈이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5. (참사랑)"부활 전 후로 삼일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이 아닌가요? 저의 핵심취지를 여전히 잡지 못하고 계시는데요?"

(답변) 이 문제에 대해서 형제님은 제가 지방교회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두 개의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인성-삼일하나님이 아니라-이 부활 전후로 어떻게 되었는가?

2) 성육신 하신 주체가 누구인가? 에 대해서 심도있는 논의를 해 보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 두 개의 문제에 대해서 저는 1)예수님의 인성은 부활 전에는 영광을 받지 못하셨지만, 부활 이후에는 영광의 상태가 되었다. 2)성육신의 주체는 2격이었다고 간단히 답변할 수 있습니다. 오래 토론할 것도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형제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형제님께서 말씀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교회역사에서 잘 정립되어 왔던 문제인데, 왜 복잡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답변해 주시기를 부탁드려 봅니다. 이미 잘 답변되어온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답변을 계획하고 있다면, 지방교회신학이 그만큼 정통신학에서 벗어나 있다는 오해를 감안하여  답변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참사랑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의 영을 읽어보면서, 참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의 통찰력에 대해 깊은 감동이 있었으며 , 특히, 경륜적인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레이는 위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그 영'까지는 나가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그래서, 이 기회에 워치만 니의 책을 추가로 검토해서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관계를 찾아보았으나, 놀라운 것은 워치만 니도 <그리스도가 성령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 그런 글을 못 접했을수도 있으나, 10여권 이상의 책들을 살펴본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그의 생각은 <그 영>에 대한 생각이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위트니스 리와 다름이 어느정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혹시나 어떤 책에서 부분적인 표현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위적,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오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스도가 성령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니의 글이 있다면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또한, 한가지 발견되는 것은 앤드류 머레이와 워치만 니의 생각이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위트니스 리가 두분의 신학을 오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군요. 현재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점이 상당히 납득이 안되고 있습니다. 좀더 신중하게 검토해보고, 혹시 이와 관련된 글을 올려주시면 많은 도움이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될것 같습니다. del modify 2007/08/13
아라우나
참사랑님,,제가 잠시 지적할 부분이 있는데,,,그리스도가 성령이다 혹은 그리스도가 성령이 되었다는 표현은 오해될 소지가 많습니다..그것은 삼일성의 위격이 구분이 없거나 양태로 곡해할 것이므로...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이 되었다.. 주님은 지금 그영이시다..이런 표현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중요한 부분이니 신중하게 답을 하셔야 합니다.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그렇습나까? 아래 은혜님이 잘표현을 해주셨네요..결국, 현재, 오순절이후는 그리스도가 성령(그 영)이 된것 아닌가요? 아니면, 성령과 그 영은 다르다는 것인가요? 다르다면 무엇이다르지요? del modify 2007/08/13
은혜
아라우나님,지방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보혜사 성령(요16:7)은 생명주는영이 아닌지요?그렇다면 (그리스도가 보혜사 성령이 되었다)라고 하면 맞는 말인지요? 그리스도가 과정을 거쳐서 보혜사 성령이 되었습니까? del modify 2007/08/13
은혜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생명주는영=그영=보혜사 성령)은 같은 말인가요? 지방교회의 교리적인 해석에 따르면 보혜사 성령이 생명주는영이라고 주장하는것 같은데...(보혜사 성령=생명주는영)이 맞습니까? del modify 2007/08/13
참사랑
혹시, 아라우나님이 주장하고 싶으신 것이,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는 생명주는 영이 되었고, 생명주는 영이 <그 영>이고, 이 <그 영>은 보혜사 성령만이 아닌, 1격+2격+3격이 통합된 삼일하나님이신 <그 영>을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영=1격+2격+3격(보혜사 성령) 을 말하는 것인가요? del modify 2007/08/13
아라우나
저의 우려는 보혜사 성령이라고 할 때에도 삼위일체 구조속에서 생각하는 제3격의 성령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내재적인 의미는 우리에게 도달하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하나님의 총체를 말합니다. del modify 2007/08/14
Hannah
은혜님과 참사랑님은 아직도 3격의 성령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 the Spirit 에 관해 불분명하시네요. 먼저 보혜사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로 변호자, 위로자, 대언자..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늘에 계신 주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보혜사이지요. 그리고 우리안에 있는 그 영이 보혜사입니다. del modify 2007/08/14
Hannah
지금 궁금한것은 '그 영'이 보혜사이냐, 본질적인 삼일성의 하나님의 제3격인 성령이 보혜사이냐? 하는 질문이신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볼까요..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성취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영이 어떤 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del modify 2007/08/14
Hannah
본질적인 존재에 있어서의 영일까요? 아니면 구속을 성취하고 생명을 분배할 수 있는 부활 후의 그 영이겠습니까? 또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이 두 영으로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 성경은 아주 쉽게 '주는 그 영이시'(고후3:17)라고 말며,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del modify 2007/08/14
Hannah
그 영은 본질적인 영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취를 사람에게 전달하고 실제화 시키는 영입니다. 아직도 두 분은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시는지요? del modify 2007/08/14
은혜
한나님,<3격의 본질적인 성령과 보혜사 성령>의 구분(차이)을 자세하게 설명하실수 있는지요? 또한 <본질적인 3격인 성령의 사역과 보혜사 성령의 사역>의 차이(구분)을 설명해 주실수 있는지요? del modify 2007/08/14
은혜
님의 주장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전의 성령은 (본질적인 성령)이고 부활이후의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라고 한다면, 본질적인 3격인 성령(부활전)과 보혜사 성령(부활전)의 사역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del modify 2007/08/14
은혜
지방교회측의 주장은 부활 이전의 성령을-본질적인 성령/부활 이후의 성령-보혜사 성령/ 이라고 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del modify 2007/08/14
아라우나
은혜님 성령하나님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아버지,아들과 동일하게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각 위격이 대표성을 가지고 움직이실 때는 단독적이지 않고 항상 동시존재하시며 신성한 하나안에서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경륜적인 측면입니다. del modify 2007/08/14
은혜
만약 님의 말씀대로, 각 위격이 대표성을 가진다 라고 할때, 3격인 성령님의 대표성은 성경 어디에서 그 대표성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지 말씀을 근거로 말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del modify 2007/08/14
아라우나
창조부터 구약과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볼 때 특별히 칭호에 따라 그 내재적인 의미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시의 하나님의 영과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여호와의 영과 구원자의 오심과 잉태로서의 성령, 보혜사 실재의 영, 생명의 영, 능력의 영, 그리스도의 영 , 예수그리스도의 영, 일곱영 del modify 2007/08/14
아라우나
등 결국 우리에게 도달하신 하나님의 영은 모든 과정을 거쳐 우리의 생명이 되신 만유를 포함한 그영 바로 삼일하나님의 총체이십니다. del modify 2007/08/14
아라우나
은헤님..저의 이해에 의한 그 대표성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우선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신성한 하나 안에서 혼합됨이나 이탈없이 각위격의 고유한 위치와 순서에 의한 안배에 따라 일을 하십니다. 경륜의 첫단계로 항상 아버지께서 선택하시고 예정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대표성을 del modify 2007/08/14
아라우나
가지고 그 선택과 예정하심을 이루시지만 반드시 그 계획은 아들안에서 성령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에 대하서는 아버지께서 이루신 계획을 성취하심 입니다. 아버지의 계획의 성취를 위해 아들은 성육신 되시고 인생과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이죠,,하지만 이러한 del modify 2007/08/15
아라우나
만유를 포함한 구속역사도 아버지와 함께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이러한 놀라운 객관적인 사실과 성취들이 우리들에게 주관적으로 실제적으로 적용 되어지는 역사입니다. 이 성령의 적용하심이 믿는이들의 생활과 일에서 체험적으로 인도와 변화가 있다는 것이죠,,그러나 여기서도 del modify 2007/08/15
아라우나
성령에 의해 행하시는 모든 역사는 아버지와 함께 아들로서 행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에 의해 행하신 모든 역사는 아버지와 함께 생명주는 영이신 아들에 의해 행하여진다는 것이죠...기묘한것은 모든일의 성취이신 아들이 단지 구속주로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분배하는 영이 되셧다 del modify 2007/08/15
아라우나
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자로서 보좌우편에 계실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으로서 우리안에 내주하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지 않습니까~~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경륜의 역사 즉 과정을 거치고 모든 것을 성취하신 그영에 의해 그분의 백성인 믿는이들이 선택되고 구속되고 거룩케되고 영화롭게 됨으로 del modify 2007/08/15
아라우나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 궁극적인 그분의 단체적인 신부 새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입니다. del modify 2007/08/15
은혜
아라우나님은 성경의 진리를 믿는것보다 오히려 지방교회의 교리를 말하고 계시는군요.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세부분의 일(사역)에서 그리스도는 2격으로서의 일(사역)으로 죽고 부활 하심으로(살과뼈가있는) 생명주는 영이 되었고,3격인 성령은 우리안에 인치심으로 계십니다(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사역)의 방면) del modify 2007/08/16
아라우나
은혜님,,일의 구분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피상적으로 보지말기를 바랍니다. 질문하나 하죠,,은헤님의 말씀대로 3격 성령은 인침으로 우리안에 계신다면, 2격 아들과 1격 아버지는 어떻게 우리안에 계시는 지요? del modify 2007/08/16
은혜
참고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분이심을 생각하시고 질문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사역)하심에 있어서의 구분을 염두한다면, 성령께서 우리안에 계신다고 말을 할때 (1격2격)은 성령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입니까? 구분은 구분으로 보셔야지/구분을 말하고 있는데,1격과 2격을 찾고있으니 del modify 2007/08/16
은혜
님의 질문에 답은 (엡3:17) (고전3:16)말씀으로 답변을 드리지요.그리고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님께서 일의 구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님이 아시는 3격의 일의 구분을 말씀해 주시고 저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del modify 2007/08/16
은혜
그리고 고후5:5~9절의 말씀이(일의 방면인가?/과정을 거친 방면인가?) 과연 무슨 의미인지 묵상해 보시고 답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el modify 2007/08/16
아라우나
은헤님은 제 덧글을 자세히 읽지 않는것 같습니다. 3격의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성취하신 모든것의 적용과 실재화 입니다. 그리고 고후5:5~9절은 장래의 일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는 현재 우리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육신의 한계안에서 신성한 생명과 본성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del modify 2007/08/17
아라우나
신성한 몸의 모양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죠,,이는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부활하여 영광의 몸을 입을 때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은혜시대에 우리는 주님을 영적인 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기에 잠시 떨어져 있으며, 대신 생명주는 영으로 만나고 연결되어 우리안에 사신다는 것입니다... del modify 2007/08/17
은혜
아라우나님, 고후5:5-9절 말씀은 장래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안에는 보증으로 성령이 계시고, 주님은 보좌 우편에 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 주와 따로 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del modify 2007/08/17
아라우나
은혜님의 현재의 그 말씀도 맞는 말입니다..그러나 8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사도들은 항상 박해를 받아 죽음에 직면했기에, 차리리 죽어서 제한 당하는 몸에서 해방되어 더 나은 영역, 즉 영적인 영역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죠,,, del modify 2007/08/18
은혜
아라우나님, 고후5:5-9절 말씀이 (일의방면인가?/과정을 거친 방면인가?) 라고 질문을 드렸는데, "처음에는 장래일이 아닙니까?그러시고 두번재는 주님과 함께 거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죠" 라고 엉뚱한 말만 하십니다. 이말씀이 (일의 방면입니까? /과정을 거친 방면)입니까? del modify 2007/08/18
아라우나
저의 표현이 엉뚱한 것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군요...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려.. del modify 2007/08/18
은혜
아라우나님, 엉뚱하다는 말이 거슬렸다면 사과 드립니다. 엉뚱하다는 말은 고후5:5-9절의 말씀이 (일의 방면인가?/과정을 거친 방면인가?)를 님에게 질문을 드렸는데, 대답은 회피하시고 동문서답(엉뚱한말)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표현이 거칠었다면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del modify 2007/08/18
아라우나
사과까지야,,,되레 미안하군요,,관점의 차이로 이해하시길,,, del modify 2007/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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