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뿌리, 솜털뿌리
 

고향 조그마한 향교 바로 옆에 있는 용한이네 집 옆에
나이가 육백년이나 되는 커다란 은행나무 암수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는 은행이 까지 않은 것으로 해서
백 가마도 더 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용한이네 집은 그 은행나무 아래쪽에 큰 마당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마당으로 저절로 떨어지는 은행만 해도 열 가마는 된다고 했습니다.
 
그 집에 자주 놀러 가 은행나무 밑에서 장기를 두고,
낮잠도 자고 그 밑에서 자주 놀았었습니다.
그 친구와 같이 팔로 둘러 은행나무 둘레를 재어본 적이 있는데
아마 열 번도 더 되었는가 그렇게 기억이 됩니다.
 
한번은 그 은행나무로부터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새로 지으려고 땅을 파는데
커다란 은행나무 뿌리가 거기까지 뻗어 있어
한동안 동네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멀리까지 뻗어 있는 굵은 뿌리 중에서도
여전히 곁뿌리가 있고 곁뿌리 옆에 잔뿌리가 있고
잔뿌리에는 솜털뿌리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높고 커다란 그 은행나무를 지탱해주는 그 굵은 뿌리들은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아니하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물과 영양을 흡수해 주는 것은
그 뿌리들에 달려 있는 잔뿌리들입니다.
 
그 멀리까지 뻗어 있는 뿌리들 옆에 붙어 있는
팔 벌려 열 번도 더 되는 굵은 나무와는
정반대의 대조적인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끊어지기 쉽게 달라붙어 있는 솜털같은 잔뿌리들이
그 나무로 하여금 실제의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영양분으로 백가마도 더되는 많은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뿌리들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때로는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굵은 뿌리가 필요하겠지만,
작은 생활 속에서의 잔뿌리가 참 실제 생명공급이 되지 않을까요
 
 
1) 많지는 않지만 아침에 대하는 몇 구절들의 말씀들,
2) 우리 입에 다른 사람들 모르게 들릴 듯 말 듯 부르는 주님의 이름,
3) 일년 일독을 따라 읽는 하나님의 말씀,
4)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람들 속에서 읽는 버스속에서의 메시지들,
5) 살을 콕콕 찌르는 환경에서도 나오는 주님에 대한 감사,
6) 지체들의 작은 교통 중에서도 얻어지는 그리스도,
7) 비온 다음날 맑개 갠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드리는 기도,
8) 지갑 속에 작게 적어온 찬송가 가사를 꺼내 들여다 보며 혼자 부르는 찬송,
9) 업무 중에도 짬짬히 카페에서 읽는 지체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글들....
 
그 외에도 얼마나 더 많을까요...
 
 
 
그러나,
또 다른 방면에 잔뿌리나 솜털뿌리는
굵은 뿌리와는 달리 끊어지기가 너무 쉽습니다.
 
 1) 우리가 가진 작은 허물들,
 2) 은밀히 행하는 어떤 죄들,
 3) 또, 자백하지 못하는 것들,
 4) 그리스도 아닌 모든 것들,
 5) 나에게 속하고 나를 드러내려는
 어떤 것을 행하려는 것들....
 
 
아! 주님, 오늘도 주님 안에 작은 뿌리를 내려
참 자양분을 얻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굵은 뿌리는 중심을 잡아주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잔뿌리와 솜털뿌리는 생명의 자양분을 얻게 해 줍니다.


보일 듯 말 듯하지만 세밀한 뿌리가 생활 중에 항상 있어
주님에게서 얻는 실제의 생명이 있기를 원합니다.
결코 이 솜털처럼, 자디잘한 이 뿌리의 생활들을
멸시하여 끊어버리지 않게 하소서!